Q1. 안녕하세요 시인님, 2019년 문학동네신인상을 통해 등단하신 이후 처음으로 펴내는 시집이에요. 감회가 남다르실 듯한데, 인사와 더불어 소감 한말씀 부탁드려요.
다들 안녕하신가요. 이렇게 묻고 나면 답을 들을 길이 없어 안녕은 어쩌면 질문이 아니라 당신이 그저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 실린 시들은 약 칠 년에 걸쳐 써낸 것들입니다. 칠 년 치의 제가 이곳에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징그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징그러움도 아름다움의 하나라고 믿는 저는 이것들을 들고 덜덜 떨며 서 있습니다. 이것들이 가닿게 될 당신의 시간은 또 얼마만큼의 애씀과 안간힘으로 가득할까요. 모든 걸 건너온 당신에게도 하얀 두부처럼 평온한 마음이 있기를 바라봅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 할지라도요.
Q2. 새하얀 표지와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겨울의 분위기가 인상적이에요. 실제로 시집에도 “고개를 들면 온통 하얀 창밖과/ 하얗게 뒤덮인 사람들이 오고가는 풍경”(「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검은 지붕 위 쌓여가는/ 하얀 눈/ 정지한 세상/ 고요하고 무궁하게”(「검은 절 하얀 꿈」), “눈을 떠보니 하얀 것들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소설가」) 등 겨울을 감각하게끔 하는 장면들이 많고요. 시인님께 겨울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사실은 추위를 몹시 타는 편입니다. 겨울 출근길에서 저는 언제나 동동거리며 몸을 움츠립니다. 묵직하게 내려앉은 어둠과 추위 속에서 코와 귀는 아리고 어깨는 긴장하여 잔뜩 굽어지고 발목은 걸을 때마다 차가운 칼날이 스치는 듯합니다. 살아 있는 몸은 번거롭습니다. 출근길에 동사하게 된다면 산재일까 아닐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잠시 합니다. 아무도 없고 내 발소리만 가득한 골목길, 내가 내뱉는 숨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정확하게 들리고 호흡이 김이 되어 눈앞에 펼쳐질 때, 사실 나는 여러 차례 죽고 여러 차례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이상한 감각이 저를 휘감고 지나갑니다. 그러고 나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펄펄 살아 있구나 깨닫습니다.
Q3.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갈하고 서정적인 시편들이 있는가 하면 ‘소음’ 연작이나 「화염」 「Beauty and Terror」 등의 시편은 시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해요. 특히 「기호와 소음」이나 「조사」 같은 시를 통해서는 시인님의 직업을 떠올리게 되기도 했는데, 현재 하고 계시는 일을 간단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직업적 특성이 시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건축 엔지니어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도심지의 높은 가설 펜스 밖으로 쏟아져나오는 사람들 가운데서 안전모와 안전화와 안전벨트를 착용한 저를 언젠가 마주치셨을 수도 있습니다.
시를 쓰는 일과 건축 일은 너무도 다르지만 정말 아주 가끔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닥과 벽이 만나는 지점의 디테일을 고민하거나 나중에는 보이지 않을 배관들을 천장 속에 묻을 때, 근로자들이 다 떠나고 남은 현장에서 홀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건축 자재들을 바라볼 때 아주 작은 것들의 힘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그런 작은 생각들을 그러모아 시를 쓰고 있습니다.
「기호와 소음」에 그려진 모습은 제 일상이기도 한데(저는 토목기사는 아니고 건축기사입니다만) 점심때면 현장을 벗어나 홀로 식사를 하며(요즘은 만두 대신 김밥을 먹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곳을 멀리서 바라보고자, 거리감을 두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늘 실패하고 있어요.
Q4. ‘미선 언니’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미선 언니’ 연작과 더불어 「솥」 「캐넌」 「제목 없는 나의 노래와 시와 그림과 소설」 등의 작품들에서는 여성 인물의 목소리가 유독 또렷하게 느껴지는데요. 미선 언니는 어떤 인물이며, 이 목소리들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들려주세요.
저는 미선 언니를 모릅니다. 미선 언니는 옆집 아이일 수도 있고, 회사 동료일 수도 있고, 2호선 열차의 기관사나 제빵사일 수도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찾은 수많은 대본을 들고 여러 인물이 되어보기를 연습하는 무명배우처럼 모든 것이 될 수도 있었을 그 누군가라고 막연히 생각해보며, 그동안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 힘의 논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조차도 저의 오만이거나 능력 밖의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하면서요.
Q5. 마지막으로,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를 읽을 독자분들께 인사를 건네주세요.
여러분들께 이번 겨울이 잘 도착하기를, 그 겨울 속에서 모두 무탈하시기를 바랍니다.